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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금융 글로벌화와 미국의 금융시스템 

80년대 후반 이후의 구조조정과 자본시장의 꾸준한 성장에 따라 미국의 금융산업 및 시장은 그 규모와 효율성에 있어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쟁력은 금융의 글로벌화라는 조건하에서 더욱 보완되고, 완결된다. 이러한 80년대 후반 이후의 미국 금융시스템의 변화는 국민국가 단위의 포드주의적 축적체계에서 글로벌 차원의 금융주도적 축적체계로 미국의 자본주의가 이행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80년대 이후 포드주의의 위기 속에서 금융의 증권화, 대형화, 겸업화, 디지털화라는 일반적 추세에 적극적으로 조응하면서 금융의 글로벌화를 주도해 왔다.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에 따른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은 한편으로 공공부문이 부담하던 외환위험의 민간화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위험의 연계매매를 허용하는 형태의 외환규제 철폐를 필요로 했고 이에 따라 80년대 이후 새로운 금융수단의 개발과 국내외 금융거래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오게 된다. 이것은 한편으로 내부적으로는 노령화사회의 도래라는 사회구조의 변화 등과 맞물려 금융의 증권화를 초래했고, 또 한편으로 역외금융시장의 확대를 가져와 국제금융시장의 통합을 촉진했다.(Eatwell & Tayler, 1998) 바로 이러한 과정에서 유동성의 제약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기관투자가들이 급부상했다. 


그런데 금융자산 운용의 증권화와 기관투자가의 부상은 자본시장의 집중과 위계화를 초래했다. 가계 자산운용의 기관화 뿐만 아니라 은행, 연기금의 뮤추얼펀드에의 위탁 등 기관간 운용위탁이 이루어지면서 개인-연기금-은행•보험-뮤추얼펀드-헤지펀드 등 위계구조가 형성됐고 다양한 업태를 포괄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거대 초국적 금융자본으로의 자본집중을 심화시켰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제적 네트워크과 자금력을 기초로 규모의 우위를 가진 미국의 상업은행, 투자은행, 투자신탁 등 초국적 금융자본이 국제금융시장의 메이져플레이어로 등장하면서 글로벌화와 시장통합을 주도했다. 규모와 경쟁력에 있어 자본시장 위계구조의 최정점을 차지한 미국의 금융자본은 포트폴리오의 다변화전략을 추구하면서 국제 자금흐름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시장지배력을 더욱 심화시키는 구조조정의 확산을 통해 거기서 얻은 막대한 경제잉여의 일부를 미국으로 환류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 금융자본의 패권적 지위에 근거한 경제잉여의 환류메카니즘은 90년대 이후 미국 신경제의 핵심적 기반이 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 금융 글로벌화의 전개가 자연발생적 과정이 아니라, 포드주의의 일국적 케인즈주의를 뒷받침했던 국제정치경제의 역학구조가 미국의 헤게모니하에 재편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와 '워싱턴 켄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상징되는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가 강력하게 관철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즉 금융 글로벌화는 본질적으로 포드주의의 위기에 대한 미국 금융자본의 적극적 대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의 기치 하에 포드주의의 산물인 협애한 국민국가 차원의 친노동적 제도 및 사회관계를 분쇄하고 반노동적 자유화, 규제완화, 민영화를 확산시켰다. 즉 80년대 남미의 외채위기 이후 구사회주의 국가의 체제전환과정에서, 그리고 최근의 동아시아 위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이행조건'의 이름 하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전개했다. 그러한 구조조정의 주요 내용은 미국의 금융헤게머니를 확고히 하는 것들이었다. 경쟁제한적인 가격•업무(상품)•소유규제를 제거하는 자유화와 시장개방, 자기자본비율 규제•회계기준 등 미국식 제도의 국제기준화를 통해 미국 금융자본의 경쟁우위를 확고히 하고 성장의 기반을 확대했던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독일, 일본 등 관계중심적 금융시스템이 갖는 상대적 우위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또한 이제 금융자본의 힘은 산업자본의 전략적 선택과 활동을 좌우할 정도로 강화됐다. 즉 금융이 지배하는 세계적인 규모의 금융주도적 축적체제가 성립된 것이다.



이 새로운 금융주도적 축적체제에 의해 미국의 자본주의는 90년대 新경제라는 유례없는 호황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금융주도적 축적체제는 본질적으로 과도한 금융유동성의 지배에 따른 높은 불안정성과 투기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은 통합된 국제금융시장의 네트워크와 자금흐름을 통해 글로벌한 차원에서 급속도로 전염될 수 있어 금융주도적 축적체제는 매우 높은 시스템 리스크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금융주도적 축적체제는 "20-80의 사회"로 표현되는 부의 집중과 계층간 불평등의 심화를 초래했다. 즉 미국 경제는 90년대 들어 저인플레-저실업율-고주가-고달러를 유지하는 가운데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러한 호황의 혜택은 일부에게만 돌아갈 뿐 소득계층간의 불균형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다수 임금노동자를 포괄하면서 안정적인 노자관계를 구축했던 포드주의의 대안은 여전히 부재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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